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바스 왕조 (문단 편집) === 과학 === ||[[파일:800px-Bodleian_MS._Huntington_214_roll332_frame36.jpg|height=280]]||[[파일:Alhazen1652.png|height=280]]||[[파일:Taqi_al_din.jpg|height=280]]|| ||[[이차방정식]]의 기하학적 해법이 담긴 알 콰리즈미의 책 페이지 ||인간의 안구 구조 해부도 ||천문을 관측하는 학자들 || [[하룬 알 라시드]]의 시대 이래 시작된 [[이슬람 황금기]]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누가 뭐라해도 찬란한 과학의 발전이었다. 특히 아바스 왕조는 [[우마이야 왕조]]와는 달리 비무슬림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학문을 흡수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덕분에 수많은 인재와 자료들을 쉽게 흡수할 수 있었고, [[유클리드]], [[프톨레마이오스]] 같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부터 저 먼 인도와 중국의 사상가들까지 다채로운 인재풀을 습득했다. 특히 [[네스토리우스교]]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바스 왕조 아래에 고용되어 수많은 그리스어 서적들을 아랍어와 [[시리아어]]로 번역해주면서 서구에서 끊길뻔한 학문의 명맥을 이었다는 의의도 남겼다. 이 시기 가장 유명한 학자들 중 하나가 '알 콰리즈미'다. 일부 사람들은 [[디오판토스]]가 아닌 알 콰리즈미를 '대수학의 진정한 아버지'라고 부를 정도. 그는 '키타브 알 자브르 와 이 무카발라'라는 수학 서적을 집필했는데 여기서 '[[대수학]]'이라는 용어가 파생될 정도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. 그는 이 책에서 선형 및 [[이차방정식]]의 첫 체계적인 풀이법을 제시했고 대수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다룬 첫 학자였다. 게다가 항을 반대 편으로 넘겨서 소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등 현대 대수학의 기본적인 요소를 정립하며 세계 수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. '알 콰리즈미'라는 단어라고 하면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는데, 그건 바로 [[알고리즘]]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. 저멀리 인도에서 만들어진 [[아라비아 숫자]]와 인도의 선진적인 수학 체계를 지중해권에 소개한 알 콰리즈미에 대한 헌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. '이븐 알 하이삼'은 '광학의 서'라는 저서에서 빛의 내향 이론을 제기했다.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서 빛이 방출되어 그 빛이 사물에 맞고 눈으로 돌아오면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. 하지만 이븐 알 하이삼은 그 이론을 부정했고, 반대로 외부에서 들어온 빛이 사물에 맞은 뒤에야 눈에 들어와 뇌가 인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. 또한 시각이 주관적이고 경험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시각이라는 감각 자체가 뇌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으며, 훗날 [[페르마의 원리]]로 정리될 '최소 시간의 법칙'을 최초로 제기하기도 했다. 그가 남긴 가장 큰 의의는 '모든 진리는 확인 가능한 절차나 수학적 추론에 기초한 실험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'라는 현대 과학의 정석과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. 심지어 그 [[르네상스]]보다도 500년이나 앞선 시대를 뛰어넘은 마음가짐으로, 그래서 그에게는 '진정한 세계 최초의 과학자'라는 멋진 타이틀을 붙여주기도 한다. [[천문학]]의 발전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. 시리아 천문학자이자 아랍 세계 최고의 천문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'알 바타니'는 [[프톨레마이오스]]의 [[알마게스트]]를 번역하고 다듬으며 거기에 자신만의 의견을 덧붙여 독창적인 우주관을 창조했다. 그는 태양을 관찰해 [[금환일식]]의 원리를 이해했으며 지구가 황도와 적도면 사이에서 이루는 각도를 정확히 측정했다. 그 외에 태양년, 분점을 정확히 계산해냈고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때 [[사인]]과 [[접선]]을 도입해 고대 그리스의 낡은 기하학적 추론법을 대체했다. 그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알 바타니의 저서들은 [[이탈리아]]와 서유럽에까지 건너갔으며, 훗날 [[코페르니쿠스]]의 지동설을 뒷받침해주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. [[율리우스력]]을 수정할 때에도 그의 자료를 참조했고 [[구텐베르크]]의 인쇄기에서도 3부에 걸쳐 그의 저서를 인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